말이 칼이 될 때│ "더 이상 혐오표현에 대한 침묵과 무시가 대안일수는 없다"

2020. 5. 29. 17:49책check, 북애프터문!

말이 칼이 될 때

홍성수│ 어크로스 출판

 

#책check * 서평이라기 보다는 단상에 가깝습니다.

 

북애프터문

읽는 내내 김지혜 저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떠올랐다. 둘 다 혐오와 차별에 대해 다루고 있는 공통점이 있는데, 차이를 두자면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좀 더 쉽고 친절한 대중교양서라면, 『말이 칼이 될 때』는 좀 더 건조하고 학술적이랄까. 또 한 권의 책이 떠올랐는데 바로 『한국 남자』. 제목에서 풍겨오는 유머러스함에 비해 경직된 서술, 기대에 비해 간명하지 않은 내용구성이 비슷하게 느껴졌다. 서술이 완결되지 않는 느낌이나 약간의 비약이 느껴지는 지점들, 간간히 두서없는 서술이 특히 그랬다. 두 책 다 도움이 되는 관점, 메세지들이 많지만 한권을 통째로 읽기가 약간 힘들다는 점이 아쉽고, 좀 더 재밌게 쓰여졌다면 더 많이 읽힐텐데하는 점이 매우 아쉽다. 혐오문제에 관심이 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어봄직하고, 편하게 읽을 대중교양서를 찾는다면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추천한다. (왜 리뷰에서 남의 책 홍보나 하고 있는지 도통 모를 일..)

 

 

이게 혐오면 네 말도 혐오야! 로 받아치는 말들을 돌아보게 한다. 이것도 저것도 혐오라고 양비론을 펼치기 보단, 그 발언의 효과를 감안해서 판단되어야 한다. 부적절하다고 모두가 혐오표현인 건 아니다. 

 

#차별금지법 을 이야기 할 때, 뭐 말 한마디 잘못했다고 다 감옥 보내려는 거냐! 고 되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반드시 대한민국 헌법을 읽어보길 바란다. 이미 대한민국 헌법 제11조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정하고 있다. 그렇다고해서 차별한 사람들을 몽땅 가두었던가? 헌법의 내용은 대체로 하위법에서 구체화된다. 평등권, 차별받지않을 권리 또한 하위법으로 구체화하는 것 뿐이다. 어떤 행위를 금지할지, 형사처벌을 할지, 행정처분을 할지 등은 사회적합의를 담아가면 된다. 법치주의 국가지만 법체계에 대해 잘 모를 수 있다. 그럼 배우자. 말 한 마디 얹으려거든 그만한 무게는 견디자.

 

 

왜 유독 혐오나 차별문제만 이렇게 날을 세우냐고 되물을 지도 모르겠다. 당장 사람이 죽어나가는 살인, 강간도 있는데 고작 이런 문제에 열을 올리느냐고. 내가 혐오나 차별 문제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만큼의 차별과 혐오의 대상은 되지 않았다는 반증일뿐이다. 실제 혐오범죄는(경찰이 어떻게 명명하는지와 무관하게) 일어나고 있고, 차별로 생계나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이제 긴박함, 절박함에 동의하려나? 누군가는 매분매초, 언제 강력범죄의 대상이 될지 긴장 속에 살아간다. 

 

 

여전히 혐오나 차별문제를 '개인간의 갈등'으로 치부하고, 당사자들이 알아서 해결할 문제라고 선 긋는 경우가 많다. 당사자들이 알아서 하려면, 알아서 할만큼의 권한과 권력이 주어져야 한다. 법치주의 국가에서 자신의 권리를 보호하는 방법은 당연히 법을 통해서일테고, 알다시피 법 하나 만들자면 국회의원의 입법발의, 법제실 검토, 소위원회 통과, 본회의 통과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법률은 과반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본회의를 통과한다. 5-60대 남성이 대부분인 우리나라 국회에서, 혐오나 차별의 문제를 내 문제로 여기는 국회의원이 몇이나 될까? 그럼 그 개인들은 무슨수로 그 사람들을 설득할까? 결국 노오력이 부족한 탓일까? 결국 권한과 권력을 나눠준 적도 없으면서 개인을 탓하는 건, 절벽에서 날개도 없는 사람을 날아보라고 떠미는 격이다. 구조적 문제를 외면하고 개인의 역량문제로 치부해선 안된다. 민주주의의 대원칙은 과반표결이 아니라 합의다. 효율성을 위해 취한 편의에 길들여져서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훼손하지 말자. 그건 어떤 말로도 바꿔 말할 수 없는 명백한 '외면'이다. 민주주의사회는 언제나 권력이 없는 사람에게 권력을 나눠주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이빨이 없으면 잇몸으로, 는 민주주의의 원칙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