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포지엄│직장내괴롭힘 금지법 시행 1년

2020. 7. 18. 12:48일상check, 북애프터문!

 

 

지난 14일에 참석했던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1년 평가 및 법제도 개선방안 주제의 심포지엄에 대한 후기.

내가 가본 국회 토론회 중에 가장 유익했고,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어서 이렇게나마 남겨둔다. 

직장내괴롭힘금지법 혹은 직장내괴롭힘방지법이라고 알려져 있는 법의 진짜 이름은 근로기준법이다. 근로기준법 중 직장내괴롭힘을 금지하는 조항을 따로 떼어 별명처럼 부르는 것. 이렇게 부르는 이유는 아마도 근로기준법 개정안- 정도로 싱겁게 부르면 부러 찾아봐야 그 내용을 알 수가 있는데다가, 근로기준법의 개정이 이 번 한 번이 아니기 때문이 아닐까. 이름만 딱 들어도 '아! 이런 법이 생겼구나/ 바뀌었구나' 할 수 있도록 어찌보면 홍보효과를 노린 네이밍이다. 

아무튼 그렇게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만들어졌고, 시행일(법을 적용하기로 시작한 날)이 작년 7월 16일이었으니 심포지엄이 있던 날은 만 1년을 이틀 앞둔 시점이었다. 과연 법은 우리의 직장생활을 정말로 바꿔놨을까? 우리의 직장은 '괴롭힘 없는 행복한 직장'이 되었나?

 

 

법이 만들어진 이후, 올 3월에 한 여성 노동자가 직장 내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사망했다. 가족과 전문가들이 이 죽음의 진상을 규명하고, 가해자에 대해 책임을 묻고, 오리온으로부터 적절한 조치를 이끌어내기 위해 대응해왔다. 하지만 피해자의 죽음에 대한 진상조사는 세달이 넘게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피해자측에서 증거를 더 가져와야 한다는 게 고용노동부의 주장이었다.

우리가 고용노동부에 이런 피해사건을 신고(진정 또는 민원)하는 이유는, 이런 사건이 있으니 조사해서 해결해달라는 것이 아닌가.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실제 노동부 근로감독관(노동사건에서 사건을 조사하고 행정조치를 내리는 사람)은 사법경찰이다. 법이 잘 지켜지는지 감시하고 조사할 권한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사해야하고, 할 수 있는 노동부는 손을 놓고 피해자더러 증거를 가져오라고 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사업장에서 증거를 조작할 충분한 여유가 주어졌고, 어쩌면 더 많은 피해자가 발생했을 수도 있다.

많은 문제제기 끝에 7월에서야 특별근로감독(고용노동부장관의 승인에 따라 우리가 티비에서 보는 '특검'처럼 사업장에 여러명의 감독관이 가서 조사를 진행하는 것)이 이루어졌다. 다행인 일이지만, 조금만 더 빠르게 대처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가장 최선은 죽기 전에, 피해자가 고통을 호소하는 즉시 해결되어야 할 것이고, 그게 어렵다면 최소한 법에서 정하고 있는 25일 내에 사건이 해결되었으면 피해자 주변의 남은 사람들이 덜 힘들지 않았을까. (고용노동부에 접수되는 사건은 대체로 25일 이내에 처리해야 한다. 사건 규명이 어려우면 한 차례 연장이 가능하고, 당사자 동의하에 10일이 추가로 연장이 가능하다.)

 

 

 

실제 피해자의 증언이다.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아 괴롭힘으로 인해 직장을 그만둬야 했다. 이대로 그만둘 순 없으니 가해자에 대한 조치를 요구하며 노동부에 신고했다. 하지만 근로감독관의 태도에 2차, 3차 피해를 받았다. 근로감독관은 마치 사업장의 편을 드는듯이 피해자에게 부정적인 추측, 소극적인 태도를 비쳤다.

피해자는 호소한다. 피해자가 기댈 곳이 공공기관인 노동부 밖에 더 있겠느냐고. 피해를 입고 나와 도움을 청하는 피해자에게 이런 태도를 보이면 피해자는 도대체 누구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냐고. 피해자의 편이 되어주면 안되냐고. 하다못해 회사의 편을 들지는 말고, 중립적인 태도라도 유지할 순 없겠느냐고.

증언 도중 울컥울컥하면서도 씩씩하게 준비해온 이야기를 읽어나가는 피해자의 모습에 되려 눈물이 났다. 증언하는 자리에서조차 마음껏 울 수 없는 게 또한 피해자의 현처지 아닐까. 근로감독관이 피해자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이었다면, 그 앞에서라도 시원하게 울음을 토해낼 수 있었다면, 이런 자리에까지 오지도 않았을텐데. 울지 않고 또박또박, 자신의 피해사실을 납득가능하게 말하라는 요구들에 피해자는 다치고 지쳤을테지만, 또 다시 일어서야 했을 것이다. 그래야 이대로 끝나지 않을테니까. 모든게 원래대로 돌아갈 순 없어도, 조금은 억울함이 풀릴 수 있을테니까. 

 

 

증언 이후 이어진 발제에서 직장갑질119는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결과를 통해, 법시행1년이 지난 시점에서 직장인들이 어느정도로 법의 효과를 체감하는지를 보여줬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남성/정규직/고연령/대규모 사업장/고임금 직장인의 경우엔 법시행 효과를 비교적 많이 체감하고 있었다는 것. 반대로 말하면 여성/비정규직/저연령/소규모사업장/저임금 직장인은 여전히 취약하고, 법의 보호를 덜 받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내가 지금껏 진행한 천 여건의 상담을 분석해봐도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 피해자의 대부분은 여성이고, 비정규직이고, 소규모 사업장 종사자다. 그럼에도 아직 이들에 대한 적극적인 보호장치가 마련되진 못하고 있다. 정말 필요한 사람들이 법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법이 조금 더 촘촘하고 넓어졌으면 좋겠다. 

 

 

김동현변호사의 말에 또 울컥. 직장내괴롭힘 금지법(이와 유사한 개념들 통칭)에 대한 이론적 연구는 계속해서 있어왔다. 전문가들도 직장에서의 만연한 폭력에 분명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전엔 이만큼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했다. 법은 국민의 표를 먹고 사는 국회의원들이 만드는 것이기도 하고, 법집행을 고려해서 만들어져야 하기 때문에 터무니 없는 법을 만들 수는 없다. 국민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어야하고, 따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공감대가 적었던 시기에 제출된 법안들이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했던 것이다.

실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한 계기는 피해자들이 용기내서 목소리를 낸 것, 피해자들과 함께한 단체들,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말하는 시민들의 힘이었다. 운동이라는 게 별건 아니다. 주장의 전이랄까. 그래 맞아, 그래야해! 라는 생각이 퍼질 수 있도록 하는 모든 게 운동이다. 이론적 토대도 분명 있지만, 이런 운동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힘을 주어 말하는 김동현변호사의 말이 왠지 뭉클했다. 

 

 

노동부는 근로감독을 행한다. 정기적으로도, 수시로도, 특별하게도 한다. 정기근로감독은 문제사업장 리스트를 작성해두고 정기적으로 순찰하는 것이다. 잘하고 있냐, 저번에 지키란 건 지켰느냐. 수시근로감독은 민원이 발생했을때, 사안에 따라 현장에 대한 면밀한 감독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진행한다. 정기근로감독과 수시근로감독은 근로감독관의 재량에 따라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특별근로감독은 고용노동부장관이 결정한다.

우리가 티비에서 보던 '특검' 같은 건데, 실제 여러 감독관이 우루루 사업장에 찾아가 사업장을 감독하는 것이다. 산업안전을 위반한 경우에 종종 특별근로감독을 행하고, 일반적인 노동사건에서 흔한 일은 아니다. 특별근로감독은 그만큼 중대하게 결정되기 때문에, 특별근로감독 대상으로 지정되는 자체로 사업장에겐 경고의 메세지가 된다. 우린 널 예의주시할거야, 너희 잘못한 거 있나없나 제대로 검사한다! 이런 느낌. 대상으로 지정되면 사업장들은 그자체로 이미지타격도 크고, 모든 직원들이 난리가 난다. 그래서 쉽게 결정하진 않는다.

하지만 직장내괴롭힘처럼 피해자의 안전과 직결되는(괴롭힘이 왜 안전의 문제인지는 언젠가 얘기할 기회가 있을것... 단순히 말하자면 실제 '죽기도 하는' 심각한 문제니까) 지난 법시행부터 지금까지 접수된 4천 여건의 직장내괴롭힘 사건 중에서 단 두건만이 특별근로감독 대상이 됐다. 적어도 너무 적은 수치다. 이 두 건 모두 피해자가 사망했다. 괴롭히지 말라고 법을 만들었는데, 죽을만큼 괴로워야만 노동부가 적극 개입한다는 것은 얼마나 모순적인가. 이런 모순을 박성우 노무사가 신랄하게 비판했다. 

 

 

피해자의 증언을 듣고 노웅래 국회의원은 토론자로 참석한 고용노동부 김대환 근로기준정책관에게 묻는다.

이 피해자가 다시 신고해야합니까? 어떻게 해결하실겁니까? 

김대환 근로기준정책관은 해당 관서에 내용을 전달해서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하겠다고 한다. 

이날 김대환 근로기준정책관은 가장 밀접한 행정기관에서 나와 있다보니 거의 모든 매를 맞아야 했다. "계속해서 하고는 있는데, 처음에만 조금 했다고 하니 억울하긴 합니다". 거의 청문회가 되어버린 풍경에 나조차 어안이 벙벙했는데, 그래도 책임있는 실무자가 개선노력을 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갔다는 게 어딘가. 보여주기 식이라도, 언론과 관련 단체, 시민들이 참관하는 자리에서 책임있는 답변을 요구하는 노웅래 국회의원의 발언에 속이 시원했다.

 

 

지금까지 국회 토론회, 증언대회 등에 꽤 많이 참석했는데, 강은미 국회의원만큼 장시간 진지하게 경청하는 분을 처음 봤다. (대체로 인삿말 하고, 기념사진 찍고 후룩 빠진다.) 사실 준비한 사람들도 3시간이 넘는 스트레이트 행사는 지치기 마련이다. 나도 허리 한 번 제대로 못 피다보니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는데, 거의 끝까지 앉아서 누구보다 경청하며, 중간중간 받아적고 누가 등 떠밀지 않았음에도 법 개정의 의지까지 적극적으로 표명하고는 자리를 떴다.

솔직히 우리나라 국회 하는 게 뭐냐지만, 여의도에서 아마도 가장 오랫동안 불이 켜 있는 곳이 국회일 것이다. 국회 직원들의 노동강도가 상상초월이라는 얘기를 여러번 들었다. 물론 국회의원이 보좌진들만큼 실무를 뛰진 않겠지만, 그래도 바쁜 건 마찬가지일것이다. 그런데도 그 긴시간을 이 사안에 써줬다는 자체로 그의 관심과 의지가 느껴져 흐뭇했다.


개선방안을 얘기하는 자리라 부족한 점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발제자나 토론자도 누누히 말했듯, 실효성이 분명 있고, 다만 아직은 부족하다는 것 뿐이다. 괴롭힘법이 있냐 없냐는 천지차이다. 피해자가 쥘 수 있는 단단한 무기가 있냐 없냐의 차이니까. 우리 사회가 더이상 이런 행동들을 묵인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니까. 그러니 너무 무기력해지지도, 회의적이어지지도 말았으면 좋겠다.

 

물론 그럼에도 아직 많은 피해자가 발생하고 있다. 굉장히 많은 수가 괴롭힘 때문에 퇴사를 고민하고, 실제 퇴사한다. 먹고 살려고 들어온 직장인데, 괴로워서 그만두게 내버려둘 순 없지 않은가. 타인의 잘못된 행동때문에 누군가의 생계가 막막해진다는 건 너무 부당하지 않은가. 더 나은 노동환경을 만들기 위해 국회도, 노동부도, 사장도, 직원도, 너도, 나도, 더 고민해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