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제10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2 넌 쉽게 말했지만

2020. 9. 4. 21:21책check, 북애프터문!

2019 제10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박상영 외 6인 │문학동네

#책check * 서평이라기 보다는 단상에 가깝습니다. 리뷰가 너무 길어져 두 편으로 나눴습니다.

총평: ★★ 

내 이야기이면서 당신의 이야기다. 책 한 권으로 우주의 맛을 느껴보시길!

목차:

대상 박상영 우럭 한 점 우주의 맛 _007

김희선 공의 기원 _109

백수린 시간의 궤적 _151

넌 쉽게 말했지만 _193

우리들 _235

데이 포 나이트 _277

이미상 하긴 _315

2019 제10회 젊은작가상 심사 경위 _363

심사평 _367

 

『넌 쉽게 말했지만 』 은 정말정말 내 얘기가 아닌가 싶었다. 내가 글 재주가 있었다면 이런 글을 쓰고 싶었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일을 쉬고 있는 나의 변명과도 같은. 다른 이에게서 내가 원하는 표현들을 얻을 땐 엄청난 위로를 받는다. 나만 유별난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묘한 동지애와 위안을 주는 소설이었다.

나는 단지 모든 것을 멈추고 싶었고, 그러나 그후의 삶이 두려워 자주 울었다. 그런 나의 매일에 대한 말들은 할 수 없다기보다는 하면 안 되는 것에 가까웠다. 언젠가 결국엔 '그만하라'는 말을 들을 것 같아서였다. 그즈음엔 내가 몇 년 전, 오래 알고 지낸 후배에게 들은 "누나, 그렇게 살지 마세요"라는 말을 자주 복기했다. 쉽게 뱉은 말이었을까, 어렵게 꺼낸 말이었을까, 나를 비아냥댄 걸까, 내게 상처를 받았던 걸까.

넌 쉽게 말했지만, 이주란, 제10회 젊은 작가상 수상집, 문학동네

미안해. 시간이 없어.
무엇이 미안하다는 것인지, 또 그 말은 진심이었는지 생각해본다. 나는 그때의 내가 화가 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내 시간만 없는 것도 아니었을 텐데.
백십일 년 만의 폭염이라고 한다. 3단지 앞 버스정류장에서 붕어빵과 옥수수를 파는 아주머니는 오늘 같은 날에도 나왔을까? 이런 것을 궁금해하며 지낸다. (…) 얼굴을 씻고 밖으로 나가면서 요즘의 내가 이런 생각들을 열심히 한다는 것을 알았고 기분이 좋았다. 나는 죽어도 알 수 없는 타인의 마음 같은 것을 신경쓰면서 초조해하지 않고 내가 결정하면 되는 것들을 생각하는 것. 그것이 죽느냐 사느냐는 아니고 붕어빵이냐 옥수수냐하는 것이지만.

넌 쉽게 말했지만, 이주란, 제10회 젊은 작가상 수상집, 문학동네

올 봄이었나, 일을 하던 중에 로또 당첨번호를 맞춰보다가 상사에게 걸린 적이 있었다.(…) 그러자 그녀는 "로또구먼, 아무것도 아니긴 뭘 아무것도 아냐"라고 말한 뒤 자기 자리로 가 앉았다. 알면서 뭘 물어보고 지랄이야, 나는 속으로만 생각했다.

넌 쉽게 말했지만, 이주란, 제10회 젊은 작가상 수상집, 문학동네

우리가 바쁜 일상에 내주고 있던 것들이 무엇이었는지는, 어느 스님 말씀처럼 멈춰야 비로소 보인다. 

일을 그만두고 저녁을 해먹다가 눈물이 날만큼 벅찼던 적이 있다. 다른 사람이 올려준 레시피대로 간장 한 숟갈, 설탕 한 숟갈 ... 그렇게 만들어 낸 대단하지 않은 밥상이었다. 그냥, 그렇게 저녁 밥을 해먹을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다. 일찍 퇴근해도 밥을 해먹으려면 힘에 부쳐서 라면이나 끓여먹었고, 그마저도 야근으로 먹고 들어오는 날이 많았다. 매일 먹는 주변 식당들의 음식은 학교 급식보다도 질렸다. 어느 식당이나 같은 조미료를 쓰는건지 하나같이 맛이 같게 느껴졌다. 정말이지, 그만 먹고 싶었다. 이제 하다하다 유기농 식재료까지 먼길 자전거 타고 가서 실어오곤 한다. 내 입으로 들어가는, 먹고 사는 문제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해진 것이다. 이게 뭐라고, 행복하다.

작가의 글은 엄청나게 의미심장한 말들을 내 뱉는 것 같지도 않고, 문장에 너무 힘을 주지도 않는다. 단조롭고 잔잔하지만, 그래서 더 내 얘기같고 우리 얘기 같다. 혐생에 치이는 중생들이라면 이 글을 읽으며 눈물 콧물 범벅이 될 수 있으니 주의요망.

그렇게 살지 말라'는 말은 쉽다. 하지만 '그렇게'가 아니라면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각자의 답을 마련하는 것은 정말이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여 이제 당신의 답이 궁금해진다. 자신의 삶을 존엄한 것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당신은 무엇을 하겠는가. 각자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할 때다.

[해설]그렇게 살지 않는다면 어떻게, 안지영, 제10회 젊은 작가상 수상집, 문학동네

대학 때 선배로부터 "그렇게 살면 너만 손해야, 너 잘 되라고 하는 소리"를 들었다. 아직도 떠오르는 거 보면 악의 없었을 그 말을 내가 얼마나 곱씹었던 걸까. 얼마 전 다른 선배로부터 "아니 혼자 뭘 그렇게 많이 생각해?" 라는 말을 들었다. 누군가 툭 내뱉은 한 마디에 기승전결을 가져다 붙이면서 재주에도 없는 극적 상상력을 동원하는 나더러 해준 얘기다.

타인은 타인이다. 내 인생을 책임져줄만큼 대단한 사람이 주위에 있지도 않고, 그걸 딱히 바라는 것 같지도 않다. 내가 그러듯이, 타인은 남의 인생이니까 쉽게 말하는 거다. 그렇게 남의 말 하나하나를 담아두고 살 필욘 없는거였다. 그렇게 살든 이렇게 살든, 알아서 살면 되지. 얼마 전 만난 또 다른 선배의 말처럼 "살수록 모르는 게 많아져야 정상"아닌가. 삶의 정답을 누가 아나. 그런게 있기나 한가. 살수록 확신할 수 없는 것들이 늘어가는 내 인생이 잘못된 게 아니라, 확신할 수 없는 것들을 힘주어 말하는 이들이 잘못하고 있는거지. 자기합리화인지도 모르겠지만, 당분간이라도 이렇게 홀가분하게 살아볼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