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장소, 환대 │뮤지컬 <빨래>와 책 <사람, 장소, 환대> 3장

2020. 7. 29. 17:50책check, 북애프터문!

tv.kakao.com/v/325141902@my

최근 놀면 뭐하니라는 프로그램의 방구석 콘서트?를 봤다. 몇달 전에 했나본데, 최근에서야 보게 됐다. 방구석 콘서트에서 내가 눈물 콧물 흘려가며 봤던 뮤지컬 빨래의 몇 장면이 나왔다.생각난김에 빨래의 리뷰인척하는 사람, 장소, 환대 리뷰를 남겨본다.

나는 경기도 토박이다. 서울토박이는 아니지만 서울의 대학을 다니면서도 본가에서 통학을 할 수 있었고, 지하철이 가까이에 있어 수도권의 어디든 다니기에 큰 불편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가난한 집의 자녀였고, 곰팡이가 피는 연립주택의 반지하방에 살고 있었기때문에 내가 수도권에 산다는 사실이 전혀 특권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커녕 차라리 지방에서 살면 이것 보단 낫게 살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어쨌든 그럼으로 인해 나는 큰 출혈 없이 서울에 입성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자취를 하지 않아도 됐고, 서울이란 도시가 그리 낯설지도 않았다. 그리 환대받는 존재는 아닐지언정 그리 배척받는 존재도 아니었다. 그래서 어쩌면 나는 그리 공감하지 못하겠다, 싶은 마음으로 뮤지컬 빨래를 봤다. 보면서 펑펑 울었다. 그리고 김현경씨의 『사람, 장소, 환대』 라는 책이 떠올랐다.

 

빨래는 타향에서 온 사람들이 서울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다. 이렇게까지 건조하게 말해도 되나 싶지만, 정말 그런 내용이다. 여주인공은 지방에서, 남주인공은 외국에서 왔다. 그리고 여주인공이 세들어 사는 셋방의 주인 할매도, 이웃집 아지매 아저씨들도 고향은 서울이 아니다. 어렵게 한 자리를 마련해서 다들 애쓰며 살아가고 있다. 특별한 에피소드 없이 소소한 서울살이 풍경을 담았는데, 무대구성이 너무 짜임있어서 정말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즉 사람의 수행performing person은 사람을 연기한다는 의미와 사람을 존재하게 한다는 의미를 둘 다 갖는다. 사람이 수행적이라는 것은 사람다움personality이 우리 안에 있지 않다는 뜻이다. 사람다움은 우리가 원래 가지고 태어났거나(그래서 잃지 않으려고 애써야 하거나) 사회화를 통해 획득해야 하는 본질이 아니다. 그보다 사람다움은 우리에게 있다고 여겨지며, 우리 스스로 가지고 있는 체하는 어떤 것, 서로가 서로의 연극을 믿어줌으로써 비로소 존재하게 되는 어떤 것이다." 『사람, 장소, 환대』, 김현경, 83p

앞서 지은이는 사람과 인간이 같은 단어가 아님을 설명했다. 3장의 첫머리에서 지은이는 사람다움의 조건을 나열하고 시작한다. 사람다움에 있어 행위자performer가 존재해야 함은 물론이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체를 하는 상대방이 있어야 하며, 서로의 performance(가지고 있는 체하는 것)를 믿어주는 의례가 있어야 한다. 

비서울출신의 사람들은 강박적으로 사투리를 '고치려'하고, '촌스러워'보이지 않으려 애쓰며 살아간다. 서울에서 '서울시민다움'은 사회에서 사람다움과 같은 요소인듯하다. 마치 표준의 삶을 살고 있었다고 증명하듯 표준말을 쓰고, 도시적인 행동(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을 하며 살아간다. 

 

 

파크는 먼저 사람을 뜻하는 라틴어 페르소나가 원래 고대의 연극에서 사용되는 가면을 가리켰음을 상기시킨다. "사람person이라는 단어의 첫번째 의미가 가면mask이라는 사실은 단순한 역사적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보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언제나 그리고 어디서나 어느 정도 의식적으로 어떤 역할을 연기한다는 점을 일깨운다(후략)" 이어서 그는 가면이 우리의 인격의 일부이며 우리는 가면을 씀으로써, 즉 어떤 역할role 또는 성격character을 연기함으로써 비로소 사람이 된다고 주장한다. "어떤 의미에서 이 가면이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품고 있는 관념-우리가 수행하려고 애쓰는 역할-을 대표하는 한, 이 가면은 우리의 더 진실한 자아, 우리가 되고자 하는 자아이다."

 

가면으로 인해 진짜 인격이 소외된다는 관점과 달리 고프먼과 파크는 그 가면 조차 우리 인격의 일부, 어쩌면 진정한 인격이라고 주장한다. 그렇기에 가면 뒤에 있는 것은 진정한 자기라기 보단, '신성한 것the sared 또는 명예'다. 서울시민으로 자리잡고자 표준화된 행동과 말을 하는 우리의 연기는 어쩌면 지방출신이라는 본질을 가리는 가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가면이 어쩌면 자아일지도 모른다. 그는 서울에 살며 이방인이 아닌 진정한 서울시민으로서 수행하고자하는 사람이지, 자신이 지방출신이라는 것을 지켜내고 싶은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에겐 서울에서도 사람으로 존재하는 것이 더욱 '신성한 것 또는 명예'다. 

우리가 일상에서 명예를 훼손당했을때 체면體面을 잃는다고 표현한다. 고프먼에 따르면 우린 얼굴을 가짐으로 인해 사람이 될 수 있다. 우리는 가면을 통해 보여지고 싶은 대로 보여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보여주고 싶지 않은 얼굴을 상대가 본다면 체면을 잃는다. 우리는 서로가 보여주고 싶은 얼굴로 서로를 대하는 예의(얼굴유지)를 지켜가며 살고 있다. 서울시민으로 살고자 한다면, 그가 어느 지방 출신인지와 무관하게 그렇게 봐주는 것이 필요하다. 상대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어째서 현대인은 규범을 지키면서도 규범에 거리를 느끼는가? 어째서 그는 벌거벗은 상태로 돌아왔을 때 비로소 편안해지는가? 그의 영혼이 깊은 곳에서 세계와 불화하기 때문이다.
현대인은 일종의 자기분열로써 이 불화에 대처한다. (...) 
현대인이 사적인 공간에서만 진정한 자기를 발견한다면, 이는 현대성의 기획의 실패를 의미한다. 더구나 우리는 이 고립된 개인들이 타자의 인정과 지지 없이 어떻게 존엄을 유지할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사적인 공간을 지켜주는 것은 개인의 자리에 대한 공적인 인정이 아닌가?" 

 

지방에서 살다 서울에 온 사람들은 서울사람으로의 역할들, 표준말이나 교양있는 행동을 한다. 그러다 자신의 고장에서 쓰던 말을 쓰는 순간을 때때로 마주한다. 자신의 가족과 통화를 할 때다. 지극히 사적으로 여겨지는 가족과의 관계에서만 자신의 '진짜' 모습이 드러난다. 그리고 통화가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듯 다시 서울사람의 옷을 입고 돌아온다. 난 이렇게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이 입혀졌다고 느끼는 현대인의 불편함에 대해 기존에 '소외'라는 개념을 사용해왔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이를 '세계와 영혼의 불화'로 정의하고 있다. 사투리를 쓰는 것이 진짜 나라면 나는 영영 서울에서 진짜 나를 인정받을 수 없는 것이 아닌가. 결국 진정한 자기에 대한 발현 또한 공적 인정에서 비롯된다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할 수 밖에 없다. 

 

위에선 서울사람이라는 가면 또한 진짜 나의 일부라고 했는데, 여기선 지방사람이라는 것이 진짜 나라고 얘기하는 게 모순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느끼기에 서울사람이라는 가면은 가짜, 지방사람이라는 내가 익숙하게 느끼는 것은 진짜라고 느낀다. 앞서는 그 가면도 진짜라는 것을 얘기했지만, 지금은 그 가면이 왜 가짜로 느껴지는지, 그리고 진짜 나와 다르다고 여겨지는 건 무엇 때문인지를 얘기하는 것이다. 주장의 모순이 아님을 다음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다.

 

"…규범을 단순히 "진정한 자아"와 대립하는, 외적이고 강제적인 힘으로 간주할 수 없다… 역할을 괄호 안에 넣은 상호작용과 그것을 조율하는 규범의 존재야말로 버거가 "존엄의 세계"라고 명명했던 현대 사회의 특징인 것이다. 
그러므로 명예와 존엄의 대립은 재고되어야 한다." 『사람, 장소, 환대』, 김현경, 103p 

서울사람이라는 가면과 지방출신은 대립되는 개념이 결코 아니다. 서울사람으로 존재하기 위해 우린 규범을 따르고, 그것을 따르면 우린 서울사람으로 인정받는다. 우리는 그런 상호작용을 통해 우리의 존재를 규명할 수 있다. 

100p에서 저자는 이 글의 목적이 명예와 존엄의 대립을 비판하는 데 있다고 밝혔다. 103p에 그 주장이 잘 서술되어 있는데, 현대사회에서 존엄이 명예를 몰아냈다면, 명예의 훼손인 모욕이 사회적 삶의 주변부로 추방됐다는 결론이 도출되어야 하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사회운동의 역사는 모욕에 대한 저항으로 이루어졌고,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모욕은 명예 뿐만 아니라 존엄도 공격한다. 그렇기에 명예와 존엄을 대립선상에 두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 시민으로 존재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명예의 문제가 아니라 존엄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지방에서도, 서울에서도, 사람이고자 하는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uskWsTaXgBg#action=share

타향에서 온 사람들이 서울드림(서울에서의 성공)을 꿈꾸며 서울에 정착해가는 과정을 그린 뮤지컬 빨래. 이들은, 이들의 꿈은 과연 환대받을 수 있을까?

서울'특별'시에선 지방사람들을 환대하진 않는듯하다. 서울이 아닌 지방출신이라는 것은 하나의 낙인처럼 작용하고 있다. 서울은 우월하고, 지방은 열등한 곳이니까. 물론 뮤지컬 초연이 올라왔던 때보단 경계가 많이 허물어진듯하지만, 여전히 사투리와 억양을 고치려, 타지출신으로 안 보이려, 내 집 한 칸만큼의 내 자리를 찾으려 많은 이들이 노력하고 있다.

꼭 서울일 필요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서울에서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서울이 환대의 장소이길 바란다. 모두에게 서울이 꿈에 그리던 곳은 아닐지라도, 웃으며 맞아줄 수 있는 곳이기를. 김현경씨의 『사람, 장소, 환대』라는 책과 겹치며 사람, 장소, 환대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책과 뮤지컬 모두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