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우리, 함께│#1 오래도록 싸우고 곁을 지키는 사람들, 그 투쟁과 연대의 기록

2020. 7. 13. 12:41책check, 북애프터문!

전태일 50주기 공동 출판 프로젝트- 너는 나다 1

오래도록 싸우고 곁을 지키는 사람들, 그 투쟁과 연대의 기록

여기, 우리, 함께

희정 │ 갈마바람

 

#책check * 서평이라기 보다는 단상에 가깝습니다.

총평: ★

지니가 준 노동절(mayday) 선물! 르포 보다는 가볍고 에세이 보단 무겁다. 모르는 이들에겐 낯설어서, 아는 이들에겐 '너무 잘 알아서' 불편할 수 있을듯. 나처럼 어중떠중하게 아는 이들에겐 너무 애쓰지 않고 시야를 넓힐 수 있어 추천. 무엇보다 재미가 있음. 고민을 많이한 작가의 문장들이 따뜻하기도, 통렬하기도 하다.  

 

 

"왜 싸우나요?"

기자의 질문을 받기 위해, 그러니까 '세간의 이목'을 받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목소리를 낸다. 

하지만 이들은 왜 싸우냐는 질문을 받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다. "왜 해고했죠?" "왜 위장폐업했죠?" "왜 임금을 안 주죠?" 애초에 이들이 물었고, 돌아돌아 세상이 뒤늦게 그걸 다시 묻고 있다. "왜 싸우죠?"

 

 

노조는 노동조합의 줄임말이다.

오랜 싸움으로 조합원수가 적어졌지만, 그래도 소수가 남아 계속해서 싸우고 있는 세종호텔 노동조합의 이야기에서 나오는 구절이다. 조합원들은 스스로를 모래알에 비유한다. 작디 작은데, 그래서 더 성가신 존재. 처음엔 바위였을 이들이 깨지고 갈라져 돌맹이가 되고, 닳고 닳아져 이제 모래알이 됐다. 오랜 시간이 만들어낸 모래알. 그래서 더 단단하고 무뎌진걸까. 모래알요정들이 머지 않아 넓은 바다와 만날 수 있기를.

 

 

기소: 검찰이 법원에 소송이 필요하다고 제기하는 것
노동위원회: 해고가 정당한지 아닌지를 가리는 곳으로, 법원에 가기 전 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를 거치고, 이후 소송(지방법원-고등법원-대법원)으로 진행된다. 이에 따라 노동사건은 총 5번 심판을 받을 수 있다. 

삶은 계속되는데, 해고상태만 멈춰있다. 우리가 흔히 '다 오르고 내 월급만 안 올라' 라고 하는데, 이들의 말로 바꾸면 '다 계속되는데, 월급만 없어'다. 아룬다티 로디가 쓴 생존의 비용이란 책에 이런 말이 나온다. 그들이 가진 건 기다리는 힘이라고. 돈이 곧 힘인 자본주의 사회라, 돈이 있는 자들은 기다리는 힘도 충분하다. 버틸 재간이 없는 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노동자들뿐이다.

 

 

투쟁은 다른 사람들과 다른 온도, 계절, 일상, 마음을 살아간다는 표현이 참 와닿는다. 지극히도 평범했던 삶들이, 그저 직장인이라는 보호색을 쓰고 살아가던 삶들이 그 전과는 달라진다. 원피스 대신 노조 조끼를 입는 것처럼.

아무래도 직업적 특성상 노동법 상담을 많이 한다. 일적으로든, 사적으로든. 정말 이런 것도 모른단 말이야? 싶을 만큼 세상 사람들은 법에 대해 '굳이 몰라도' 살아갈 수 있다. 나 같이 법전이라도 한 번 펴 본 사람들은 너무 쉽게 아는 것들도, 웬만한 사람은 모르고 잘만 산다. 법 없이도 산달까? 크게 죄 짓지 않고, 큰 재산 없으면 굳이 법을 알 필요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법의 도움을 구할 때는 대체로 '피해자'가 된 상황이다. 해고를 당하거나, 임금을 밀리거나. 성실하게 일만했는데, 갑작스레 부당한 상황에 맞딱드린다. 그제서야 법이 필요하다. 법이 아닌 뭐라도 좋으니 나의 억울함을 풀어줄 것이 필요하다. 그게 투쟁이다. 모르고 잘만 살았던 것들을 알아야 하는 순간을 맞닥뜨리는 것. 

투쟁은 삶의 결이 달라지는 일이다. 

 

 

한국도로공사 수납원들의 투쟁 이야기에 등장하는 문장이다. 기업들은 말을 잘 듣는 근로자를 선호한다. 그래서 더 고용이 불안한 형태로 전환하는 것이다. 정규직에서 기간제로, 시간제로, 일용직으로, 특수고용으로. 밥줄을 쥐고 흔들면 말 잘듣는 근로자가 될 수 밖에 없다. 가만히 수납창구에 앉아 일만할 땐 10년이고, 20년이고 가만 뒀지만, 정규직고용을 주장하니 단번에 내쳐진다. 언제든 해고가능했던 사람들이, 이제 함부로 해고할 수 없는 사람들이 되는 건 기업이 원하는 게 아니다. 이렇게 말 안듣는 근로자는, 일을 못하든 잘하든, 몇 년을 일했든 상관 없다. 내보내야 한다. 말 안 듣는 이들의 유쾌한 싸움을 멀리서 지켜보며 응원했었는데,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더 가깝게 느껴진다. 

 

 

공장 해외이전을 이렇게까지 낭만적으로 표현할 수가 있나. 자본주의 사회는 이윤의 극대화를 목표로 한다. 자본의 세계화라고 하는데, 한국에 살면서 쓰고 먹는 것들 중에 한국에서 난 것들이 많이 없다. 우리는 이토록 글로벌화된 사회에서 딱히 물건의 국경을 따져 묻지 않고 쓰고 먹는다. 그러다보니 기업들은 더 싼 임금을 찾아 유럽에서 아시아로, 아시아에서 아프리카로 공장을 이전해가고 있다. 아메리칸 드림처럼 한강의 기적을 꿈꾸고 서울로 상경했던 우리의 조부모 세대도 옛 이야기다. 노동집약적 생산공정은 개발도상국들을 찾아 옮겨간지 오래고, 더 싼 임금을 찾아 끊임없이 옮겨가는 중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 찾은 이들로 공장은 돌아가지만, 조금이라도 넉넉한 꿈을 꿀 여유는 주지 않는다. 배부른 소리말라며, 더 가난한 꿈을 꾸는 이를 찾아 공장은 옮겨간다.

이토록 아픈 이야기를 이토록 아름답게 쓰다니. 참으로 잔인한 작가다. 

 <계속>